thought sipsa
안녕
일단 노래부터 틀어줘!!
요즘 무아(無我)와 분별심에 대한 생각이 자주 떠오른다. 불교적 가르침 외에도 페소아가 말하는 인생관에서도 무아의 개념이 슬쩍 보이는데,
“어설픈 현자들은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여정이 곧 삶이라고 우리를 속여왔지만, 내가 누구인지를 망각해야 하는 여정이 곧 삶일지도 모른다 “… “내가 나라는 사실을 포기하는 것만이 방법일지도 모른다. 꽃나무가 더 이상 꽃나무이기를 포기하는 꽃 지는 계절처럼, 장마가 더 이상 장마이기를 포기하는 쨍한 다음 날 아침의 맑은 하늘처럼, 포기와 체념의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을 알려면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더 현명한 환멸에 도착한 이후여야 하리라.”
내가 평생 친구들에게 “대충 살다가 죽고 싶다”라고 밖에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아름답고 정확하게 표현해 주는 것 같아서 쾌감이 쩐다. 내가 갖고 있는 아상과 아견을 버리는 것이 무아라고 하는데, 무아라는 개념은 사무량심(四無量心)에서 온다. 그 속엔 자慈,비悲,희喜,사捨의 마음이 포함되어 있다. 그중 사 (버릴 사) 안에 무아의 개념이 설명되어 있다. 그러므로 무아는 아상(我相)아견(我見)을 버리는 것에서 온다는 걸 알 수 있다. 페소아가 말하는 포기와 체념이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는 말을 강조하고 싶다.
여기서 분별심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분별심을 놓는다는 건 시비를 가리는 마음이나, 호불호를 가리는 마음, 선악을 가리는 마음을 놓는다는 개념이다. 우리가 포기, 체념, 망각이라는 단어에 붙는 좋지 않은 뉘앙스(분별심)를 놓아야 비로소 페소아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다고 느낀다.
내가 이름 붙이기 바빠 놓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느끼는 요즘이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뭐든 그 이름(label) 안에 갇히기 마련이기 때문에 나는 요즘 분별심을 내려놓고 이름 붙이기를 조심하려고 하는 중이다. 진리 없음 안에 진리가 있다. 내가 쓰고 있는 글도, 지금 내 생각도 진리가 아니라 그냥 내 안에 펼쳐진 것의 표현일 뿐이다.
분별심을 내려놓으려고 노력하니까 미국에서 대학 다니던 내가 생각난다. 그때 나의 정신 상태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ㅋㅋㅋㅋㅋㅋㅋ. 최근까지만 해도 나는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다르지 않다. 마음의 위치는 변했지만,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그냥 나다……. 하하.. 하지만 다른 점 한가지는 지금 내가 2022년으로 돌아간다면 아마 만족스러운 학교생활을 했을 거라는 사실이다. 미국 대학 생활이 더 이상 싫지 않을 거 같다고 해서 딱히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건 아니다. 오히려 그때 나의 힘들었던 상태가 안쓰럽지만 귀엽고 .. 재밌고.. 감사하다. 재미있고 감사한 이유는 내가 그렇게 폭발적으로 미국이 싫지 않았더라면 미국에서의 생활을 포기하고 히라가나조차 모르는 상태로 일본 입시에 뛰어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닥인 내 상태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 상태도 있는 거라 믿고 있다. 그래서 만약 지금의 안정감이 끝나고 다시금 우울함이 시작된다고 해서 그것이 두렵지 않다. 그 바닥을 기는 상태의 내가 어떤 다른 형태의 선택을 빚어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게 내가 추구하는 자연스러움이자 대충 살다 죽는 것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글쓰는 거 존나 힘들다 휴……………………….. 사이트 아니었으면 글이고 나발이고 걍 누구 한 명 앉혀놓고 조잘거리는건데.
ㅋㅋ그리고 미국에서 생활했을 때의 사진들을 조금 남겨놓을거얌
가볍게 즐겨주세요.. xoxo